[카테고리:]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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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무우수

    이곳에서의 시간은 짧고도 커다란 큰 사랑이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큰 사랑 안에서 있었는지 끝나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작고 조용한 공간에 거인 같은 내가 쿵쿵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어색하고 움츠러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내가 작아진 걸까, 공간이 커진 걸까, 무우수에 있는 내가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내 세상 같았달까. 일하는 게 진심으로 행복했다.

    내가 정말 원하던 거다. 손님과 가까이서 따뜻하게 두 눈을 마주칠 수 있었고, 그들과 다정하고 편안한 기운을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던 거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서로를 북돋고 배려하며 다정하고 활력 있게 일할 수 있었다.

    마감 때마다, 조금 더 덥고 힘이 들어가는 화장실 청소를 서로가 가겠다고 했고, 무거운 것을 조금 더 힘센 사람들이 들어주었고 감사해했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항상 매번 감사하다 말해주었고, 할 일을 모두 마치고 한가한 시간이 오면 소소하고도 귀한 삶의 이야기를 틈틈히 나누었다.

    나는 그렇게 일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의 근무는 사랑의 꽃다발을 한가득 끌어안은 듯한 하루였다. 아침 일찍부터 마지막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던 단골 청년이 왔고, 나를 보실 때면 어찌나 따스하게 바라봐 주셨는지 모를 호주에서 오신 단골 부부도 오셨다. 그리고 혼자 또는 아들과 함께 오셔서 예쁜 시간을 보내시고 가시는 나의 건강 길라잡이 선생님이 오셨다. 상상조차 못 했던 선물들을 내게 건네주셨고 가실 때는 따스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강아지 또는 아이들을 통해서 손님들이 처음 보는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웃음을 나누던 순간은 정말로 아름답고 행복했다. 내가 그 공간에 함께하고 있음에 기뻤다. 따로지만 함께. 공간에 사랑이 흐른다면 그건 딱 오늘이었다.

    대화는 많이 하지 않았어도 눈빛으로, 미소로 마음 가득 따스함을 나누었던 애정하는 단골손님들… 보고 싶을 거다.


    쉬는 날인데 마지막 근무인 나를 봐주러 와서 편지를 건네준 재상님,

    너무도 예쁘고 꼼꼼하게 포장한 책과 봉투들을 건네준 소유님,

    함께 마지막까지 마감을 마친 뒤에 집에 갈 준비를 하며 선물을 건네준 희윤님

    집에 와서 정리를 하고 나서야 책상에 앉아 그들의 편지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세 편지와 그 안에 들어 있던 것들을 보고
    너무너무 감사해서, 너무너무 커다랗고 꽉 찬 사랑이 느껴져서, 내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었는지를 일깨워줘서, 어떻게 이렇게 사랑을 주실 수 있을까, 과분하게 느껴지면서도 더 열심히 받은 사랑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되어 눈물이 줄줄 났다.

  • 친구들과 한라산

    2026. 10. 27

    덴마크에 가기 전에 한라산을 꼭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지원이가 무척 가고 싶어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점점 끝이 보이고 있었다. 1-2년 정도이겠지만, 그래도 아쉽다. 최대한 시간을 맞춰 열심히 만나기로 한다.

    날은 우리 친구들 모두가 쉬는 유일한 날인 화요일로 정했다. 며칠 전부터 스멀스멀 걱정이 되긴 했다. 많이 피곤할까 봐. 걱정은 나뿐 아니라 모두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전날까지 일을 열심히 하고, 평소에 결코 눈 떠 보지도 못하는 시간인 오전 4시 30분쯤에 힘겹게 일어나 약속 시간까지 무사히 만났다.

    나는 암소식을 알기 좀 전, 꽤나 기운차던 때를 마지막으로 2년 만에 한라산을 갔다. 매주 뛰어서 오르기도 했던 한라산은 내게 꽤나 각별한 산이다. 행복하고 괴롭고 자유롭고 고통이고 아름답고 매섭고 경이롭고 살벌했다. 모든 것들을 진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랑하기도 싫어하기도 한 그런 산.

    이번에는 지원이와 친구들과 어떤 압박도 없이 그냥 편안하게 숨이 닿는 만큼만 걸어 다녀 왔다. 내 의지대로 몸을 먼저 성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호흡에 집중해서 숨이 쉬어지는 것을 따라 몸을 움직였더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호흡과 페이스에만 집중할 때는 정말 힘든 느낌이 안 들었고, 그것을 놓쳤을 때만 힘들었다.

    다 각자 속도대로 편안하게 산에 다녀왔다. 먼저 갈 사람은 먼저 가고, 천천히 갈 사람은 천천히 가면서. 따로 또 같이 산에 다녀왔다.

    지원아, 친구들아 우리 또 같이 소중한 추억 만들었다 그치-

  • 미열

    몸이 좀 아프다.
    쉼 없이 생각하는 게 많고, 하는 게 많아지면 밤마다 미열이 난다. 머리가 묵직하고 몸살 기운처럼 몸이 살짝 으슬으슬하고 몸이 뜨겁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긴 해서 계속 스케줄을 이어 나가게 되는 것 같다. 이 증상이 심한데 내일은 일에 가야 한다면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잔다. 그러면 다음날 문제 없이 (일어나는 건 항상 피곤하지만) 일을 하고 돌아 올 수 있게 된다.

    근데 이게 내 몸을 위하는 패턴은 아닌 것 같다. 몸에 유익하진 않은 것 같다. 갑상선암에 걸려 두 갑상선을 모두 다 떼어낸 나에게 이롭지는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수술한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은 나에게는 말이다.

    스스로가 멈추지 못하는 기관열차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다. 하고 싶은 게 수십 가지이고, 해야 할 것들이 수백 가지 같다. 실제로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보면 지금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것들을 다 하려고 하면 몸이 나를 멈춰 세운다. 그래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한계도 다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나니 한계는 분명히 존재함을 보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잘 안 된다. 내가 살아온 평생의 습관이 이 모습이어서인지, 브레이크를 밟으며 느긋하게 자동차를 주행할 줄 모른다. 어디에 갔다 처박히고 나서야, 그때서야 멈추게 된다.

    욕심이 아니라 뜨거운 마음대로 마음껏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이 마음이 욕심이 아니라 열정이라면 좋겠는데, 이 마음은 끝까지 가서 결국 나를 불태워 버린다.

  • 참신하게 나답게

    크리에이티브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예전에 중선농원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템플을 그만둔다고 말씀드렸을 때, 내게 말하셨다.

    “그래요, 아주 이노베이티브하게 한 번 살아보세요.”

    그렇다. 나는 이 찰나의 삶을 참신하고도 혁신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그게 어떤 삶일지는 잘 모르지만, 대략 예측할 수 없고 뻔하지 않은 그런 느낌.
    물론 살아가는 게 이미 태어나서 먹고 자고 싸다 죽는 뻔한 스토리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라는 질문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지가 아닐까.

    오늘도 ‘어떻게’를 뜨겁고도 가난한 마음 안에 품어 보낸 하루였다.

  • 김치찌개

    지원이와 김치찌개를 해 먹었다.

    어젯밤에 외로워서 속상한 지원이에게 음식을 해주겠다고 했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넣은. 계란말이와 함께. 그리고 다음 날, 마트에 가서 묵은지 두 개와 앞다리살과 감자 두 알을 사 왔다.

    다시마와 황태 껍질을 넣고 국물을 낸 물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고, 토막토막 썬 양파와 감자를 넣었다. 그리고 묵은지와 돼지고기, 설탕까지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갑자기 피곤해진 나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에 지원이는 엄청 통통하고 맛깔나는 계란말이를 말았다.

    마트에서 장 봐 해 먹는 게, 사 먹는 것보다 비싼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함께 요리하며 집중과 온정을, 기다림과 설렘을, 따뜻한 마음을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의 맛은 말할 것도 없이 끝내주는 맛이었고.

    내가 집에서 함께 밥해 먹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 건, 지원이와 함께하고 나서부터다. 이 행위는 일상적이라서 쉽게 지나치게 되는 삶의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 나는 내 삶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겠다.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만들기 시작한 게 8월 26일이고, 오늘이 10월 7일이니까 2달 되어 가고 있다. 카페 일을 하면서, 지원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요가를 하면서, 달리기를 하면서, 틈만 나면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있다. 시작은 Framer에서 했지만 얼추 완성을 해 갈 때쯤 워드프레스로 작업대를 옮겨 버렸다.

    두 번째로 시행착오를 겪어내고 있다. 매일 피곤하고, 시간에 쫓기고 있음에도 나는 이것을 정말 하고 싶다. 하는 게 재미있다. 얼른 만들어서 매일매일 글을 적어 남기고 싶고, 찍은 사진을 남기고 싶다. 내가 정확히 어떤 마음에서 이걸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꽤나 악착같이 이걸 붙잡아 끌고 가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고 싶고, 나이가 들고 시간이 쌓일수록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는 내가 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더 잘나고 싶다. 그런 바람을 늘 갖고 살아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화는 참 더디고, 생각보다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삶이 변화되고 삶이 크게 점프하려면 매일 내가 하던 대로, 매일 내가 가던 대로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 가본 낯선 길을 가야 하고, 험한 길을 가야 하고 기존보다 몇 배는 더 센 저항을 밀며 가야 한다는 걸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안 하던 거, 꺼려하던 거, 어려워하던 거, 하기 싫어하던 것들을 힘들더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고 느낀다. 그 수많은 하기 꺼려하던 것들 중에 딱 떠오른 것은 ‘요가로 돈 벌기’, ‘나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알리기’ 이 두 가지였다.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항상 싫어서도 못해서도 도망쳐 왔던 것이다.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제는 하겠다고 마음먹어서인지, 이것이 하고 싶어졌다. 요가로 돈도 벌고, 나를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알리는 일들을, 잘하고 싶어졌다.

    왜 하고 싶을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어떻게 할까? 이유가 뭐지, 목적이 뭐지 …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수두룩한데 그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올라왔다.

    나는 내 삶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겠다. 솔직히 나는 내 삶의 태도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내 삶의 태도를 세상에 보여주는 일은 꽤나 설레겠다. 마치 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낸 작품을 전시하듯이, 어쩌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고 하고 싶은 게 아닐까 ?

  • 정수만을 남기어

    작가들이란,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서 지나치는 것들까지 모두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구나. 

    자기 자신이라는 거울을 비추어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들. 그렇기에 자기 자신을 더 투명하게 닦아내어, 깨끗이 닦아내어서 자신이 보는 대상이 비춰질 때까지 닦아내어 세상에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영감을 주는 작가일수록 자기 자신을 정말 닦아내는 작업을 해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도 마찬가지 같다. 잘되는 사업이 되려면, 자신의 의도나 모토를 선명하게 해서 그대로 꾸준히 실행한다면 그 사업은 잘될 것이다. 자신의 잡다한 생각과 잡다한 욕심을 다 걷어내고 딱 한 가지 정수만 남겨 둔 채로.

    우리 몸도 씻지 않으면 때가 낀다. 생각도 정리하고 정돈하지 않으면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자신의 본래 의도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가 무언가를 정말 멋지게 만들고 싶다면, 해내고 싶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안과 밖을 닦아내고 덜어내어 단 하나의 정수만을 남겨두어야 한다.

  • 나의 집

    홈페이지에 나의 어떤 이야기들을 아카이브하고 싶은지 실질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매일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홈페이지가 나의 집이 될 것이고, 내 집을 나는 평생에 걸쳐 손보고 만들어 가고 싶다.

    —

    지원이는 매번 나의 도시락을 싸 준다.

    내가 부실하게 밥을 먹으면 속이 상한다면서.

    속옷 차림으로 씻지도 못하고 열심히 내 도시락을 싸 준다.

    그 뒷모습이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