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 외국에서 살기는 채연이의 숙원사업(?), 못다 풀어야만 할 도전과제다.
외국에서 살기는 두 번의 시도와 실패로 마무리 되는가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전의 문을 닫기엔 일렀다. 나는 다시 세 번째 시도를 해야만 했다. 2026년에는 꼭 외국에 나가겠다는 바람을 무슨일이 있어도 이루고 싶었다. 언제서부턴가는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반드시 나가야만 했다. 2025년 아마 봄부터였나, 채연이는 지원이에게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슬쩍 내비쳐 보였다. 그런 채연이에게 가랑비에 옷 졌듯 졌어들어 우리는 외국에서 함께하는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려갔다.
어디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채연이는 정말 왠만하면 어느 나라든 다 좋았다. 그래서 외국 살이에 낯선 지원이에게 선택지를 먼저 주고 싶었다. 나는 어디든 좋으니, 지원이가 가고싶은 나라로 가자.
지원이는 아마 우리가 사귀기 전부터 얘기한 적이 있다. 자기는 언젠가 한 번쯤 코펜하겐에 가서 한 두 달 여행하고 싶다고 말이다.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마치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그래서 지원이는 일편단심 덴마크였다. 어디에 젤 가고싶어? 물어보면 항상 덴마크.
나라 선택의 권한은 지원이에게 있다고 말한 나였지만, 현실적인(?) 부분에서 덴마크는 워홀로서 쉬운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있었다. 어느날, 갑상선 수술을 마치고 난 직후, 또 밤 잠 못 이루다가 외국살이를 늦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바로 지원이에게 자기 아직 덴마크가 유효해? 물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우리 준비해서 바로 가보자! 했다. 마음에 뭔가가 확고히 서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살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좀 내려 두고, 더 하드코어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좀 더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챌린지라서 시시껀껀한 고민을 할 세 없이 오직 ‘살아내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서 더욱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게 한국, 여기 제주에서의 삶이 결코 편안하기만 하거나 안정이 보장된 삶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좀 새로운 경험. 그게 하고 싶었다.
